혼자 반추하는 크리스마스이브
나 홀로 즐기는 크리스마스 만찬
유튜브로 구유 경배 예절과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봉헌 예정
나는 신앙심 깊은 냉담자다.
이 무슨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헛소리일까?
하지만 정말 그렇다.
평소에는 주님을 생각하지도 않는다.
성당은 손에 꼽을 정도로 어쩌다 한 번 간다. 미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친가와 외가 모두 신실한 성가정에서 태어나 백일도 되기 전에 세례를 받았건만 신앙생활은 한없이 나태하다.
집안 어른들 모두 신앙은 본인이 만들어간다는 지침 아래 성당 가라고 들볶지 않아서 가능한 태도다.
그러나
나의 소중한 애착물건은 묵주반지다. 그냥 반드시 있어야 한다.
조금만 힘든 일이 있으면 바로 주님부터 찾는다.
미사를 보지 않을 뿐이지, 기도하는 양은 그 어떤 신자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로 힘겹다면? 명동성당을 돌아다니노라면 안정된다.
왜 명동성당이냐고? 그냥 명동성당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가 좋다.
나만의 크리스마스
사실 혼자 보내게 된 이번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명동성당을 가려고 했다. 성당을 거닐며 아픈 상처를 위로하고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촛불도 봉헌할 예정이었다. 가능하다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도 봉헌하고 싶었다.
하지만 얼마 전에 다녀온 여행의 피로를 풀지 못한 탓에 계획을 급격히 수정했다. 물론 올해 들어 가장 춥다는 날씨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에 구유 경배 예절과 미사는 유튜브를 통해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대미사를 라이브로 송출해주는 채널을 찾으며 크리스마스가 무슨 뜻이더라, 성당에서는 무엇을 했더라 하고 새삼 곱씹어보았다.
크리스마스이브(Christmas Eve)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을 뜻하는 그리스도(Christ)와 미사(Mass)의 합성어이다. 즉 그리스도의 탄생을 위한 미사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브는 저녁, 잠, 전야를 뜻하는 Evening의 줄임말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이브는 성탄 전야라고 부른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행사는 4세기쯤 확립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하루를 전날 해질 무렵부터 다음날 해가 지기 전까지로 여겼다. 따라서 크리스마스는 본래 24일 저녁부터 25일 저녁까지가 맞는 것이다. 성서는 예수님께서 밤에 탄생하셨다고 기록하니 하루의 개념이 달라진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크리스마스 이브는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직전의 거룩한 밤이 된다.
이 때문에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도 이브에서 크리스마스로 넘어가는 자정에 시작한다. 또한 크리스마스이브에 성당을 가면 대미사 전 구유 경배 예절이 있는데 이는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후 구유에 뉘었다는 성서를 따라 이를 경배하는 의식이다. 하느님의 아들이 가난과 궁핍 속에서 지상에 내려와 가장 낮은 곳에 계셨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참고로 ‘구유’는 소나 말의 먹이를 담는 그릇이다.
크리스마스와 이브의 뜻을 찾아본 나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빠르게 주모경을 바치고 나만을 위한 만찬을 준비했다.
특별한 날에 고기가 없으면 아쉬우니까 치킨
추운 날 유난히 생각나는 떡볶이와 어묵, 그리고 분식에서 빠지면 섭섭한 순대와 튀김
그래도 명색이 성탄 전야인데 싶어 준비한 케이크
참고로 빵집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눈에 들어왔기에 고민 없이 고른 것이다.
혼자 먹기에 지나치게 많은 양이지만 만찬인데 뭐 어떠랴 싶었다.
유튜브에 크리스마스 캐럴을 치니 나오는 수많은 플레이리스트들 중 하나를 켜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음식을 맛보며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은은하고 맑은 캐롤 덕분인지 아니면 맛있는 음식들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성당에 간 것 못지않게 마음이 고요해졌다.
곧 있으면 구유 경배 예절과 대미사를 봉헌하게 된다. 최근 주님을 많이 찾아서 그런지 대미사가 무척 기다려진다. 성체를 모시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어차피 이 시즌은 신자들이 몰려 고해성사를 하기도 어려울 테니 성당에 있어도 성체를 모시기 어려울 것이라 위안했다.
방송이 시작되면 빈 구유가 있을 테고, 신부님께서 축성 기도를 하신 후 안치식이 시작되겠지. 예수님께서 구유에 자리하시고 성요셉과 성모님 상, 그리고 대림초가 들어온 뒤 모두가 경배하고 구유 예물을 봉헌할 것이다. 그 다음 대 영광송과 함께 성탄미사를 봉헌할 것이다.
지금 겪는 이 시간도 주님께서 안배하신 길의 일부이길 기원하면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사랑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내가 미사에서 정말 좋아하는 시작예식을 기다리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천주 성부와 보이지 않는 천주의 형상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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